부모님 병원비 영수증을 펼칠 때마다 숫자보다 먼저 걱정이 올라오는 밤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는 불안한 마음이 아닌, 제도와 보험을 내 편으로 돌려 부모님 병원비를 차분하게 줄여 가는 길을 함께 걸어가 보자.
1. 부모님 병원비, 어디서부터 줄일 수 있을까
부모님 병원비를 줄이고 싶어도 어디를 손대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진료비, 약값, 검사비, 간병비까지 한 장의 영수증에 다 섞여 나오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부분이 부담을 키우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첫 단계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보는 연습이다. 🩺
예를 들어 72세 김OO 어머니가 2024년 9월 폐렴으로 5일 입원해 총 진료비가 180만 원이 나온 상황을 떠올려 보자. 영수증을 뜯어보면 건강보험이 적용된 급여 항목,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 본인부담상한제로 환급 가능한 구간이 섞여 있다. 여기에 실손보험 보장, 혹은 재난적의료비 지원 여부까지 겹치면서 실제로 내야 하는 금액이 크게 달라진다.
즉, “어떻게 하면 병원비를 줄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쪼개야 답이 나온다. 건강보험으로 줄일 수 있는 부분, 실손보험으로 보전할 수 있는 부분, 정부·지자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부분, 그리고 순수하게 ‘소비습관’ 차원에서 줄일 수 있는 부분이 따로 있다. 이 네 가지 축을 나눠놓고 보면 복잡해 보이던 병원비가 훨씬 단순한 그림으로 바뀐다.
부모님 병원비를 줄이는 데 가장 먼저 할 일은 ‘숫자를 한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부모님 통장에서 자동이체되는 건강보험료, 실손보험료, 최근 1년간 병원비 지출 내역을 한 페이지에 모아 보는 것만으로도 어디서 새고 있는지 감이 온다. 이때부터는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로 판단할 수 있어서 훨씬 덜 지치게 된다.
부모님 명의 또는 자녀 명의로 ‘의료비 전용 통장’을 하나 만들어 두면 병원비 흐름을 파악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매달 20만~30만 원처럼 정해진 금액을 이 통장으로 옮겨 두고, 병원비·약값·간병비는 이 통장에서만 지출되도록 설정해 보자. 6개월만 지나도 평균 지출액이 눈에 들어오고, 어느 달에 비용이 튀는지도 바로 보인다.
병원에서 받은 영수증과 진료비 상세내역서는 무조건 스마트폰으로 찍어 두는 습관을 들이자. 2024년 3월, 5월, 8월에 각각 15만 원, 42만 원, 9만 원이 나갔다면, 폴더 이름을 ‘2024_부모님_병원비’로 만들어 월별로 정리해 두는 식이다. 나중에 실손보험 청구, 소득·세액공제, 재난적의료비 신청 때 한 번이라도 더 활용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
건강보험과 실손보험, 정부 의료비 지원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순서에 따라 보장 범위가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동일한 입원비라도 건강보험 적용 후 남은 본인부담금에 실손보험이 들어오고, 그래도 큰 금액이 남으면 재난적의료비로 한 번 더 줄어드는 식의 구조를 가진다. 이 순서를 이해하고 있어야 “이건 이미 건강보험에서 최대한 지원받은 상태인가?”를 판단할 수 있다.
부모님 병원비가 나올 때마다 아래 네 가지를 적어보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두면 좋다. ① 총 진료비 ② 건강보험이 부담한 금액 ③ 내가 실제로 낸 금액 ④ 실손보험·정부지원 신청 여부. 한 번 만들어 두면 이후에는 날짜와 병원명만 바꿔 쓸 수 있어, 부모님 건강 상태와 의료비 흐름을 동시에 관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결국 부모님 병원비 절감의 출발점은 “건강보험이 어디까지 해주고, 나머지를 누가 채우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 다음 단계에서 실손보험을 조정하고, 재난적의료비 같은 제도를 적용해 나가면 부담이 한 겹씩 벗겨져 나간다. 아래부터는 각각의 축을 조금 더 깊게 나눠서 살펴보자.
2. 건강보험만 잘 써도 병원비가 줄어드는 구조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어느 병원에, 어떤 방식으로’ 진료를 받느냐에 따라 본인부담금이 크게 달라진다. 같은 무릎 관절염이라도 동네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받는 경우와 상급종합병원에서 바로 진료를 받는 경우, 그리고 1차 병원을 거쳐 의뢰서를 들고 가는 경우의 비용 구조가 전혀 다르다. 💊
대표적인 예로 2024년 기준, 경증 질환으로 상급종합병원 외래를 바로 방문하면 본인부담률이 높게 적용된다. 반대로 동네의원 → 병원 → 종합병원을 단계적으로 이용하면 부담률이 낮아진다. 만성질환이 있는 부모님이라면 주치의 역할을 할 ‘기준 병원’을 하나 정해 두고, 큰 검사가 필요할 때만 상급종합병원으로 옮기는 식의 동선 설계가 중요하다.
또 하나 많이 놓치는 부분이 바로 병실 선택이다. 상급병실(1·2인실)을 이용하면 건강보험이 일부만 적용되거나 아예 적용되지 않아 하루 병실료가 수십만 원씩 올라갈 수 있다. 반대로 다인실을 이용하면 병실료 부담이 크게 줄고, 일정 기준 이하 소득이면 간병비 지원까지 연결될 수 있다. 병실을 선택할 때 의료진에게 “건강보험 적용이 가장 잘 되는 병실”을 먼저 물어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동네에서 가까운 내과·가정의학과, 두 번째는 필요 시 의뢰서를 써 줄 수 있는 종합병원이다. 2023년부터 혈압·당뇨처럼 만성질환이 있는 부모님이라면 정기적으로 다니는 병원을 중심으로 처방을 받는 것이 보험료 절감에 유리한 경우가 많다. 여러 병원을 옮겨 다니면 중복 검사로 비용이 새기 쉽다.
건강보험에는 1년 동안 내가 낸 병원비가 일정 금액을 넘으면 초과분을 돌려주는 ‘본인부담상한제’가 있다. 예를 들어 2023년 본인부담금 합계가 기준금액을 넘었다면, 2024년 여름쯤 건강보험공단에서 환급 안내가 오거나 자동으로 계좌로 입금된다. 부모님 이름으로 로그인해 1년에 한 번 정도는 반드시 확인해 보자.
건강보험 안에서도 여러 제도가 병원비를 줄여 준다. 암·심장질환·희귀질환 등은 산정특례로 본인부담률이 내려가고, 65세 이상 노인은 외래 정액제 적용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제도는 자동 적용이 아니라 ‘등록 신청’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모르면 혜택을 놓치게 된다.
-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 – ‘재난적의료비 지원’, ‘본인부담상한제’, ‘산정특례’ 메뉴에서 최신 기준과 신청 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1577-1000 – 부모님 주민등록번호를 옆에 두고 전화하면, 최근 1년 병원비와 상한제 적용 가능 여부를 상담받을 수 있다.
- 지사 방문 – 가까운 지사에 영수증과 신분증을 들고 가면, 어떤 제도를 추가로 활용할 수 있는지 직원이 직접 안내해 준다.
매년 11~12월쯤 부모님과 함께 앉아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서 1년 치 병원비를 조회해 보자. 이때 본인부담상한제 초과 여부, 산정특례 등록 필요성, 장기요양보험 신청 가능성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1년에 하루, 1시간만 투자해도 다음 해 병원비가 전혀 다르게 나온다.
건강보험을 잘 활용하는 핵심은 “최대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와 병원을 선택하되, 꼭 필요한 검사와 치료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진료과 선택, 병원 등급, 병실 유형, 등록 제도만 조정해도 부모님 병원비의 기본 바닥이 한 단계 내려간다. 이 바닥을 낮춰 놓은 뒤, 실손보험과 정부지원으로 위쪽을 깎아 나가면 부담이 훨씬 가볍게 느껴진다.
3. 실손보험, 꼭 필요한 부분만 남기는 똑똑한 사용법
많은 자녀들이 “부모님 실손보험은 그냥 유지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입 시기가 2009년 이전인지, 2010~2017년 사이인지, 2018년 이후인지에 따라 보장 범위와 갱신 주기, 보험료 인상률이 크게 다르다. 실손보험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필요 이상으로 비싼 보험료를 내면서도 정작 병원비 보장은 충분히 못 받는 모순이 생긴다. 📑
실손보험은 기본적으로 ‘건강보험에서 보장하고 남은 실제 본인부담 의료비’를 채워 주는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살펴본 건강보험 활용이 먼저이고, 그다음이 실손보험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에 대해서도 일부 보장을 해 주지만, 최근에는 비급여 보장 범위가 줄어들고 자기부담금이 높아지는 추세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부모님이 앞으로 어떤 병원비를 쓸 가능성이 높은가?”이다. 이미 70대를 지나고 있다면 입원·수술 보장은 중요하지만 과도한 도수치료, 미용 목적 시술 등 비급여 항목 보장은 상대적으로 우선순위가 떨어진다. 반대로 60대 초반이라면 아직 활동량이 많아 사고·상해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고, 치과·안과 치료 계획에 따라 특약 구성도 달라질 수 있다.
부모님 실손보험을 점검하려면 서류를 산처럼 쌓을 필요는 없다. 보험사에서 받은 계약자 안내장, 가입 시 작성한 청약서, 그리고 약관만 확보해도 큰 그림은 보인다. 보험사 앱이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2010년 4월 1일, 2013년 7월 10일 같이 구체적인 가입일자와 상품명이 나오니, 캡처해 두고 비교해 보자.
부모님이 예전에 설계사가 권유한 대로 여러 보험사에 실손을 중복 가입한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실손보험은 실제로 쓴 병원비 이상으로는 보장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중복 가입은 보험료만 낭비하는 셈이 된다. 2024년 기준으로도 1인 1실손이 원칙이므로, 가장 조건이 좋은 하나만 남기는 것이 비용 절감에 유리하다.
부모님 실손보험을 점검할 때 기억해야 할 핵심 문장은 딱 하나다. “보험료를 줄이는 것보다, 나중에 실제로 병원비를 돌려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다.” 보장을 크게 줄여 보험료만 아끼면, 정작 병원비가 나왔을 때 실망이 더 커질 수 있다.
실손보험 정리는 혼자 고민하기보다, 공적인 상담 창구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다.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 또는 각 보험사의 콜센터에 ‘상품 설명서와 약관을 다시 보내 달라’고 요청하면 최신 버전을 받아볼 수 있다. 이 자료를 가지고 부모님과 함께 항목별로 체크해 보면, “이 특약은 앞으로 쓸 일이 거의 없겠다”라는 판단이 서는 부분이 분명히 나온다.
실손보험은 한 번 가입하면 평생 그대로 가는 상품이 아니다. 의료기술과 제도 변화에 따라 보장 구조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최소 5년에 한 번은 전체 구성을 들여다보는 것이 좋다. 2015년 6월 가입, 2020년 7월 재점검, 2025년 7월 다시 점검하는 식으로 5년 간격의 타임라인을 캘린더에 적어두면 실손이 부모님 의료비를 든든히 지켜 줄 수 있다.
실손보험을 활용할 때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청구 습관’이다. 1만~2만 원 정도의 소액 진료비는 번거로워서 그냥 넘어가게 되는데, 이런 건이 1년에 10번만 쌓여도 10만~20만 원이다. 대부분 보험사는 모바일 앱으로 3년 이내 진료분까지 청구가 가능하니, 분기마다 한 번씩 모아서 청구하는 날을 정해 두면 놓치는 돈을 줄일 수 있다.
4. 부모님을 위한 정부·지자체 의료비 지원 제도 한눈에
건강보험과 실손보험으로도 막기 어려운 병원비가 있다. 암, 희귀난치질환, 큰 수술처럼 한 번에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이 들어가는 경우다. 이때 마지막 방어막이 되어 주는 것이 바로 국가와 지자체의 의료비 지원 제도다. 🏥
대표적인 제도로는 재난적의료비 지원, 의료급여, 긴급복지 의료지원, 지자체별 중증질환 의료비 지원 사업 등이 있다. 이름은 비슷해 보여도 대상, 소득 기준, 지원 한도, 신청 창구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우리 집이 어디에 해당하는가”를 먼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님과 자녀의 소득·재산 구조를 솔직하게 공유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2024년 기준 재난적의료비 지원은 소득이 일정 기준 이하이고, 연간 의료비가 가구 소득 대비 일정 비율을 넘는 경우에 진료비의 일부를 추가로 지원해 주는 제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담당하고 있어, 지사 방문이나 전화 한 통으로 자기 집이 지원 대상인지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병원비가 다 나가고 몇 달이 지난 뒤”보다, 가능한 한 빠르게 문의하는 것이다.
상급종합병원에는 보통 사회복지실이 따로 있다. 수술이나 항암치료가 잡히면, 수술 동의서를 쓰기 전이라도 사회복지사에게 “부모님 의료비 지원 제도가 있는지”를 먼저 상담해 보자. 2022년, 75세 아버지의 심장수술 비용 1,200만 원 중 400만 원을 병원 사회복지사의 안내로 지원받은 사례들도 적지 않다.
서울, 경기, 부산처럼 큰 지자체는 자체 복지포털을 운영하며, 의료비 지원 사업을 따로 공지하는 경우가 많다. ‘저소득층 의료비’, ‘노인 의료비’, ‘암 환자 의료비’ 같은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사업이 나온다. 공고는 2023년 4월~12월처럼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으니,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 재난적의료비 지원 – 건강보험 가입자 중 의료비가 갑자기 크게 늘어난 가구를 대상으로 일정 비율을 지원.
- 의료급여 –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을 대상으로 병원비 본인부담을 크게 줄여 주는 제도.
- 긴급복지 의료지원 – 갑작스러운 질병·실직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가구에 한시적으로 의료비를 지원.
- 지자체 의료비 지원 – 난임시술, 암 조기검진, 희귀질환 치료비 등 각 지자체에서 별도로 운영하는 사업.
많은 사람들이 “정말 힘들어졌을 때만 주민센터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미리 상담을 받아도 전혀 문제가 없다. 담당 공무원은 현재 소득·재산 기준에서 받을 수 있는 의료비·생계비·주거비 지원을 함께 안내해준다. 병원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전에 한 번, 정말 힘들어졌을 때 한 번, 최소 두 번은 문을 두드려 보자.
정부와 지자체의 의료비 지원 제도는 자주 바뀌고, 같은 이름의 제도라도 연도별로 기준이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 인터넷 글만 믿기보다는, 반드시 최신 공고문과 담당 부서의 안내를 확인해야 한다. 부모님 병원비가 크게 나왔을 때, “혹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제도가 없는지”를 점검하는 습관은 생각보다 큰 금액 차이를 만들어 준다.
5. 당장 이번 달부터 실천할 수 있는 병원비 절감 루틴
제도와 보험을 아무리 잘 알아도,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병원비는 그대로다. 반대로 몇 가지 작은 습관만 바꿔도 병원비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부모님이 혼자 병원에 다니는 경우라면, 자녀가 사전에 ‘루틴’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
먼저 병원 방문 전에는 꼭 질문 리스트를 준비해 드리자. “이번 진료에서 꼭 확인해야 할 것 3가지”를 미리 적어 두고, 부모님께 전달해 드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1) 약을 얼마나 오래 먹어야 하는지, 2) 같은 효과의 더 저렴한 약이 있는지, 3) 불필요한 검사가 없는지” 같은 질문을 적어 두면 진료 시간이 훨씬 효율적으로 쓰인다.
둘째, 병원비 결제 후에는 10분만 투자해 영수증을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자. ‘선택진료’처럼 이미 사라진 항목이 잘못 청구된 경우는 드물지만, 같은 검사가 중복 청구되거나 간단한 환불이 가능한 항목이 섞여 있는 경우가 있다. 영수증에서 낯선 항목을 발견하면 바로 원무과에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병원비가 줄어드는 사례가 종종 있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저녁 30분만 정해 부모님 병원 영수증과 카드 명세서를 함께 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2024년 1~3월 동안 부모님 병원비가 각각 18만 원, 24만 원, 19만 원이었다면, 어떤 달에 어떤 진료가 추가되었는지 이야기해 보면서 패턴을 찾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이 검사는 매번 하는데 꼭 필요할까?”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모든 병원을 비교할 필요는 없다. 대신 부모님이 자주 겪는 질환 하나를 골라, A병원과 B병원의 진료비를 비교해 보자. 예를 들어 허리 통증으로 2023년 9월에는 동네 정형외과에서 3만 5천 원, 10월에는 큰 병원에서 6만 2천 원이 나왔다면, 진료 내용과 효과를 부모님과 함께 비교해 본다. 비용 대비 만족도가 더 높은 병원을 기준 병원으로 정하는 것이 좋다.
병원비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비슷한 효과라면, 덜 아픈 가격을 선택하는 것”이다. 같은 약, 같은 검사라도 병원과 진료 방식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종이 노트든, 스마트폰 메모장이든 상관 없다. 진료 날짜, 병원 이름, 진단명, 처방약, 비용을 한 줄씩만 적어도 부모님 건강 상태와 병원비 흐름을 동시에 기록할 수 있다. 6개월만 꾸준히 적어 보면 어떤 병원에, 어떤 이유로, 얼마를 쓰고 있는지 뚜렷한 패턴이 보인다.
이런 루틴은 처음에만 조금 번거롭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이번 달에도 병원비가 많이 나왔네”라는 막연한 걱정 대신, “이번 달엔 검사가 많았지만 다음 달에는 줄어들겠구나”라는 예측이 가능해진다. 예측이 가능해지는 순간, 병원비는 ‘통제할 수 있는 숫자’로 바뀐다.
6. (보너스) 부모님과 병원비를 편하게 이야기하는 대화법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남는다. 바로 부모님과 ‘돈’과 ‘건강’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일이다. 많은 부모님이 자녀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병원비 이야기를 숨기거나 줄여 말하기도 한다. 반대로 자녀는 걱정되는 마음에 직설적으로 말하다가 부모님 마음을 다치게 만들기도 한다. 🤝
가장 좋은 출발점은 “돈 이야기”가 아니라 “안심”을 먼저 꺼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머니, 병원비는 같이 보는 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앞으로 크게 아프시더라도 걱정 안 하셨으면 해서 그래요.”처럼 부모님을 걱정하는 마음을 먼저 보여주면 대화의 벽이 조금 낮아진다. 그다음에야 비로소 구체적인 숫자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대화를 할 때는 ‘질문형’ 문장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좋다. “왜 병원비를 이렇게 많이 쓰셨어요?”보다는 “이번 달엔 어떤 진료를 더 받으셨어요?”처럼 묻는 방식이다. 같은 정보라도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부모님의 방어심리가 크게 달라진다. 질문형 대화는 부모님을 ‘설명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도를 같이 선택하는 파트너’로 느끼게 해 준다.
병원비가 많이 나온 날은 부모님도 이미 지쳐 있다. 이때 바로 비용 이야기를 꺼내면 감정이 먼저 올라오기 쉽다. 보통 진료나 수술 후 3일 정도 지난 주말 오후처럼, 몸 상태가 조금 안정된 시간에 차 한 잔을 놓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어머니 병원비”, “아버지 병원비”라는 표현 대신 “우리 집에서 병원비를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라는 표현을 사용해 보자. 같은 내용이라도 ‘우리’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부모님은 혼자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문제를 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느낌이 있어야 이후 보험 조정, 지원 제도 신청 같은 실질적인 이야기가 잘 이어진다.
결혼기념일, 어버이날, 부모님 생신처럼 이미 기념일이 있는 날을 ‘건강과 돈을 함께 점검하는 날’로 정해 보자. 그날만큼은 건강검진 결과, 병원비, 보험, 저축 상황을 함께 꺼내 보고 “앞으로 1년은 이렇게 준비해 보자”라고 작은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의미 있는 날과 현실적인 점검을 연결하면, 대화가 훨씬 부드럽게 흘러간다.
부모님 병원비 이야기는 한 번에 끝나는 대화가 아니다. 몇 달에 한 번씩, 조금씩 깊이를 더해 가야 한다. 처음에는 영수증을 함께 보는 정도에서 시작해, 이후에는 보험 보장 범위, 재난적의료비 신청, 장기요양보험 등으로 넓혀 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마음과, “우리 집은 이런 방식으로 준비하자”라는 합의를 만드는 과정이다.
✅ 마무리
부모님 병원비를 줄이는 일은 단순히 숫자를 깎아내리는 작업이 아니다. 건강보험이 어디까지 지켜 주는지, 실손보험이 어떤 부분을 채워 주는지, 그리고 정부·지자체가 마지막으로 어떤 안전망을 펼쳐 주는지 차근차근 확인하는 과정이다. 여기에 생활 속 루틴과 가족 간의 솔직한 대화가 더해지면, 예상치 못한 큰 병원비 앞에서도 훨씬 덜 흔들릴 수 있다.
오늘부터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부모님 의료비 통장 하나 만들기, 최근 1년 영수증을 한 번 모아서 살펴보기, 건강보험공단과 실손보험 청구 내역을 함께 확인해 보는 것만으로도 출발선은 충분하다. 여기에 재난적의료비, 긴급복지, 지자체 의료비 지원 같은 제도를 하나씩 점검해 나가면, “혹시 큰 병이라도 나면 어쩌지?”라는 막연한 불안이 “그래도 준비한 만큼은 버틸 수 있겠다”라는 현실적인 자신감으로 바뀐다.
부모님 병원비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짐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설계해 나가는 안전망이다. 오늘 단 30분이라도 시간을 내어 부모님과 병원비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면, 그 대화가 앞으로 몇 년간 부모님 건강과 우리의 마음을 지켜 줄 든든한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